JOSHUA TREE AND SPACE

WAVES OF LIFE

AFTER THE SYMBOL

DEC.2025 

많은 사람들은 도시를 여행할 때, 도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명한 랜드마크들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혹은 그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나는 그런 모습을 자주 관찰했다. 그 사람들에게 도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징들의 집합을 둘러보는 것이고, 그리고 그 여행의 목적은 그 도시에 도착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꽤나 안전한 선택이고, 어떻게 보면 명확하고 실패하지 않는 선택이다. 다시 본인이 사는 곳으로 돌아가서도, “나는 그 도시를 다녀왔다”라고 자신 있게 주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도시라는 것은 하나의 사유 시스템에 가깝다. 그 도시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사람들과 시간들이 쌓여 있는지, 어떤 사고방식 위에서 지어진 도시인지 알아보는 것이 내 관심사이다.

그 도시에 어떤 미술관들이 중요하게 기능하고 있는지, 어떤 건축가들이 어떤 재료와 사고방식으로 건축을 남겼는지가 더 궁금했다. 나는 이런 여행을 ‘질문을 이동시키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안에 여러 가지 질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말로 꺼내지 않아도 몸과 감각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질문들.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도시 속 어떤 질서와 흐름을 좋아하는지, 사람마다 다른 질문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그 질문들을 다른 공간 속에 올려놓는 일이다. 다른 공기, 다른 밀도, 다른 사회 속에. 그때는 같은 질문이 다른 표정으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여행 후에 어디를 갔는지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한다. 낯선 장소와 도시에 도착하는 여행이 있고, 질문들을 이동시키는 여행이 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면, 이런 태도는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뉴욕 여행이 처음이고, 4박 5일 정도의 시간이 내게 있다면, 나 역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보고, 센트럴 파크를 걷고, 자유의 여신상을 향해 배를 탔을 것이다.

우리는 도시를 여행하기 전에 이미 그 도시를 수없이 보면서 지내왔다. 영화 속 타임스퀘어, 드라마 속 센트럴 파크, 그리고 뉴스 속 월스트리트. 그래서 여행은 종종 처음 가는 장소에 나를 떨어뜨리는 과감함보다는, 내가 본 이미지를 실제로 확인하는 일이 되곤 한다. 이 확인은 도시를 이해하기 전, 먼저 몸을 안심시키는 의식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확인에서 여행이 끝나고, 어떤 사람들은 그 확인 이후에 질문이 시작된다. 랜드마크를 확인한 뒤에도 이상하게 기억 속에 남는 것이 그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 옆의 작은 골목들이었을 때,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한 도심 속보다 처음 가본 갤러리의 계단에서 내 호흡이 더 고르게 느껴졌을 때.

그때부터 도시는 상징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이 된다.

AESTHETICS
DEC.2025

요즘 나는 ‘미학’ 아이디어에 다시 끌리고 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의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미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들이 있었고, 반복해서 참고하는 스타일 역시 명확했다. HELVETICA, SWISS MODERNISM, MODULAR GRIDS, PRIMARY COLORS, ICONOGRAPHY —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몇 가지 키워드로 내 세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시 나는 왜 그런 디자인 언어들에 반응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내가 만드는 작업물들은 언제나 그 AESTHETIC을 향하고 있었고, 그 방향성은 보는 사람에게도 명확하게 읽혔다. 한 교수가 내 작업을 보며 “VERY SWISS”라고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는 내 취향과 방향성이 더 뚜렷해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나는 다른 디자인 스타일을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늘 정제된 시각 언어 위에서 작업한다. 그 위에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때로는 그 규칙을 미세하게 어긋나게 배치하며 긴장감을 만든다. 하지만 멀리서 보면 여전히 명확한 질서가 있고, 색이나 형태의 작은 조정만으로 변주를 주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지난 작업들을 찬찬히 돌아보면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 가지 DNA가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내가 만드는 시각 언어는 비슷한 결로 흘러가고 있다.

학교에서는 미쳐 깊이있게 생각할 틈이 없었던 거 같은데, 지금에 와서 나는 미학을 생각해보고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기부터해서 지금까지 흐르고 있던 그 통일된 언어는 어떤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작업물들의 흐름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세계에 반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즘 이어지고 있다.

BRANDS, COLORS, AND CITIES
DEC. 2025

도시마다 고유한 색과 팔레트가 존재한다는 걸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과 뉴욕을 지나 LA에 정착해 살아보면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진짜로 느낄 수 있었다.

빛의 온도, 공기의 습도, 사람들이 걷는 속도, 건물들의 재료에서 질감과 색이 도시의 고유한 팔래트를 만들어낸다는걸 요즘 더욱 느끼고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색은 결국 그 도시에 태어난 브랜드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걸 피부로 느끼고 있다.

뉴욕은 차가운 철근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색이 맞부딪치는 격렬한 도시이다. 빠르고 정확한 뉴요커들의 걸음, 대비가 강한 건물들의 그림자, 차가운 공기는 뉴욕 태생의 브랜드들의 정체성과도 닮아 있다. Supreme의 거칠고 반항적인 에너지, Thom Browne의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레이어링에서 보여지는 회색빛은 뉴욕의 차가움과 긴장을 정확히 담아내고 있다.

서울은 차가운 화이트의 도시이다. LED 조명의 선명함과 찬 기운, 수직으로 올라간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들, 높은 유리 건물들에서 반사되는 날카로운 빛. 그래서 Post Archive Faction 같은 브랜드는 서울의 느낌을 담고 있다. 절선, 기능성, 기술적인 정교함, 서울의 빛이 만들어 낸 미학이다.

도쿄도 기반은 분명 회색이지만, 그 속에 목조 건물과 낡은 목제 가구 처럼 오랜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요한 따뜻함이 함께 있다. 차가운 콘크리트와 따뜻한 재질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도시. 도쿄는 “정교한 혼란 속의 규칙”을 가진 곳이다. Comme des Garçons이나 Sacai 같은 브랜드는 이 감성을 정확히 반영한다. 혼란스러운데 단정하고, 실험적인데 고요하다.

도시의 색이 브랜드의 사고방식과 많이 닮아있다.

식생이 풍부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햇빛, 해질녘 붉게 번지는 헤이즈—이 도시의 팔레트는 따뜻하고 유기적이다. 그래서 LA의 브랜드들은 자연광에 적응된, 느슨하고 감각적인 태도를 보인다. Stüssy와 Chrome Hearts는 트렌드보다 생활, 구조보다 감각, 완벽함보다 시간의 흔적을 선택한다. 흐트러져 있는게 오히려 자연스럽고, 햇빛과 바람에 바래서 더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브랜드란 결국 그 도시의 색에서 태어난다고 생각을 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에 무의식적으로 끌리는지는, 어쩌면 우리가 어떤 도시의 공기속에서 살고 싶은지와 연결 되는 부분이 아닐까.

CHAIR AND TIME
DEC. 2025

의자는 풍경을 장면으로 만드는 장치이다.

의자는 공간의 성격을 바꾸는 물건이다. 의자가 놓이지 않은 곳은 이동하는 공간, 지나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의자가 놓이는 순간, 그 자리는 멈출 수 있는 장소가 되고, 정적인 공간으로 전환된다.

의자는 인간과 직접적인 물리적 인터랙션이 일어나는 몇 안되는 가구이기도 하다 벽과 바닥, 천장처럼 크고 고정적인 요소들은 우리 인간에게 섬세한 상호작용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자는 인간의 몸을 받아들이며 공간과의 관계를 구체적인 경험으로 변환한다.

의자에 앉는 순간, 풍경은 장면으로 바뀐다. 풍경은 지나가는 배경이고, 장면은 의식적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공간이다. 의자에 몸을 내려놓는 행위가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그 자리에서 흐르는 시간의 결까지 달라지게 한다. 의자는 그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의자에 앉음으로써 비로소 ‘관찰자’가 된다. 움직임이 멈추는 순간,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 세계가 열린다. 빛이 스며드는 방식, 공기의 흐름, 공간을 채우는 소리의 질감과 때로는 음악 — 이 모든 감각은 앉아 있을 때 더욱 체감되는 정보들이다.

의자가 놓인 공간은 머무르는 공간이 된다. 사람이 머무르면 이야기가 생기고, 이야기가 생기면 장소에 대한 기억을 가진다. 그 기억의 출발점에 의자가 있다.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시간을 디자인하고 장면을 시작시키는 오브젝트다.


RESONANCE
NOV. 2025

항상 왜? 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던 나는 그동안 우리 세대 이전의 본인만의 세계관을 확립한 창작자들 — 그래픽 디자이너, 패션 디자이너, 예술가, 건축가들을 보며 어떤 작업물에서 내가 감동을 넘어선 ‘공명’을 느끼는지에 대해 고민해왔다.

형태 안의 온도, 여백 속의 리듬, 구조 안의 긴장. 그건 단순한 미적 취향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그들과 나만의 방식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인간의 삶을 조직하는 질서로 해석했고, 도널드 저드는 공간과 물질을 본질적인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길 원했다. 솔 르윗은 아이디어의 체계 안에 예술의 본질을 가두었고, 안도 다다오는 빛과 콘크리트로 영혼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논리와 구조로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이었다.

이세이 미야케는 기술과 몸의 관계를 통해 따뜻한 질서를, 레이 카와쿠보는 인간의 불완전함 받아들이고 옷을 철학적인 조형물로 바라보았고, 버질 아블로와 니고는 기존의 문화적 질서를 재해석하며 시대의 감정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번역했다.

이들의 세계에서 ‘미(美)’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유의 구조이자, 세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나는 그 언어에 공명했다.

형태와 질서 속에서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 — 박서보의 반복, 디터 람스의 질서, 마시모 비넬리와 오틀 아이허의 정확함 속에서 흐르는 따뜻한 온도. 그건 차가운 기능미가 아니라, 감정의 구조였다.

아름다움은 소리치지 않아도 들리고, 감정은 표현되지 않아도 존재하며,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따뜻하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JUDD
SEP.2025

도널드 저드의 가구는 매우 직관적이다.

마치 어린아이에게 의자를 그려달라고 부탁했을때 나올법한 그런 디자인의 의자들을 도널드 저드는 만들었다. 그의 의자는 모든 장식을 덜어내고, 어떤 감정도 어떤 해석도 요구하지 않은 마치 헬베티카 서체 같은 의자이다.

저드의 오브제는 솔직하다. 금속은 금속의 표면과 택스쳐,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나무는 나무의 결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는 재료가 가진 물성과 색을 아름답다고 느꼈던거 같다.

그런 정직함은 보는이로 하여금 특정한 감정이나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오브제 자체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만든다.

저드에게 미니멀은 사물이 가진 본래의 성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상태라 믿었기에, 불필요한걸 전부 제거 했을때 남는 가장 정확한 형태를 아름답다고 우리에게 제시했다.

그가 바라본 아름다움은 감동, 서사, 표현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 반복되는 질서, 재료의 물성, 형태의 정직한 존재 방식이였다.

저드의 작업은 박서보의 ‘Ecriture’와 김환기의 후기 점화와 같은 결의 감각을 품고 있다.

박서보의 반복되는 붓칠, 김환기의 점, 저드의 모듈은 다른 문화권과 시대이지만, 반복되는 구조를 통해 감정이 아닌 집중, 질서, 리듬을 보여준다. 그 표현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반복 되는 작업 과정이 만들어 내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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